우에마치다이치[上町台地]를 찾아서
우에마치다이치라고 하는 곳은 지금의 지도로 설명을 하자면 북쪽은 우메다[梅田]에 가까운 덴만바시[天満橋]근방으로부터 오사카시의 남쪽 끝에 있는 수미요시[住吉]근방까지 오사카시내 중심을 종단하는 대지(臺地)(주위의 평지보다 높고 평평한 땅)를 말합니다. 원래 이 대지는 기원전 7000년경(조몬(繩文)시대)에는 동서 2.5km / 남북12km에 이르는 바다에 둘러싸인 길다란 반도였다고 합니다. 즉 당시에는 현재의 오사카는 대부분 바다 속에 있었습니다. 바다에 둘러싸인 곳이었기 때문에 우에마치다이치는 밖에서 적들이 진입하기가 어렵고 수자원도 풍부해서 식물이나 동물들, 그리고 인간에게도 비교적 생활하기가 좋은 환경이었다고 추측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처음 일본열도 근방에 사람들이 들어온 후 비교적 이른 시점부터 여기서 터전을 잡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그 후 농경문화가 확산되면서 이 지역 일대에 집락도 생기게 되는데, 7세기 이후에 국제무역이 활발해지면서 바다에 둘러싸인 이곳 우에마치다이치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됩니다. 나니와즈[難波津]와 스미노에츠[住吉津](항구를 말함)를 통해 물자나 기술, 문화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당시의 천황이 여기를 거점으로 중국대륙이나 한반도와 교류를 하기도 하고, 고대 일본의 정치가로 일본국가의 기초를 세운 쇼토쿠타이시(聖徳太子)가 중국에서 전래한 불교의 흥성을 기원하면서 일본 최초의 절, 시텐노지[四天王寺]절을 건립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645년에는 나니와노미야[難波宮]궁이 지어져서 여기서 정치를 하게 되면서 일본의 수도 역할을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나니와노미야궁이 수도로서의 역할을 한 기간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국제무역・일본국내의 물류의 요소로서의 우에마치다이치의 역할은 시대가 흘러가도 변함이 없었고 나중에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여기에 오사카성을 짓게 되었습니다. 일사천리로 설명이 끝나버렸습니다. 너무 간략하게 축소시켜 말하기는 했지만 설명은 이 정도로 해두고, 어서 고대 오사카 / 우에마치다이치로 출발합시다!
모리노미야[森ノ宮]에서 고대인을 만나다
우에마치다이치는 역사상 중요한 역할을 해 왔습니다. 지금부터는 구체적인 관광명소를 소개하면서 고대 오사카의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첫번째는 역시「오사카의 시작」부터 해야지요. 조몬(縄文)・야요이(弥生)시대 당시의 오사카로 안내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JR간조센(環状線, 순환선)의 모리노미야(森ノ宮)역에서 내렸습니다. 역에서 남쪽으로 5분정도 걸어가니「모리노미야 유적[森の宮遺跡]」에 도착했습니다. 모리노미야 유적은 조몬(縄文)시대 중기부터 야요이(弥生)시대까지에 속하는 유적으로 서부 일본 최대의 패총(貝塚)이 여기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오사카 시민 제 1호 님(유골)도 여기에 계신다고 합니다.
지금은 그 유적 위에 음악이나 연극과 같은 공연을 하는 다목적 홀「피로티 홀(ピロティーホール)」이 서 있습니다. '피로티'란 고상식(高床式: 기둥을 세워 바닥을 지면보다 높이 올려 짓는 건물구조)을 말합니다. 40여년 전에 발굴된 유적을 보호하기 위해서 고상식 구조로 지어진 것입니다. 때문에 유적 전체를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홀 서쪽 1층에 있는 교실만한 크기의 전시실에 유적발굴물들을 전시해 놓고 있습니다. 벽에는 연표같은 것도 붙어 있어 한 눈에 알기 쉽게 되어 있습니다. 근처의 초등학생들도 공부하러 온다고 합니다.
「패총(貝塚)」이라고 하는 것은 요컨대 쓰레기더미를 말합니다. 당시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가 쌓여서 유적이 된 것입니다. 모리노미야 유적인 경우 조몬시대 중기부터 야요이시대까지라고 하니까, 약 2000년동안에 쌓인 쓰레기라는 것이죠. 지금 시대라면 엄청난 양이 되겠는데, 이 유적으로 당시의 사람들의 먹던 음식이라든지 문화 수준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 전시물을 구경해 봅시다. 재첩과 굴 껍데기, 도미나 갯장어, 농어 등의 가시, 사슴이나 멧돼지 등생각보다 좋은 음식을 먹었더군요. 그 외에도 화살촉이나 낚싯바늘, 나이프로도 사용된 석기나 토기의 조각도 있었고, 야요이시대의 토기에는 왕겨가 붙어 있는 것도 있었습니다.
그럼 슬슬 오사카시민제 1호 님(유골)을 뵈러 갑시다. 와, 진짜 유골입니다. 추측되는 신장: 148cm, 성별: 여, 연령: 장년. 아마도 30대일 거라고 추정되고 있습니다. 즉 이 사람은 오사카의 할머니 제1호라는 거로군요. 아마도 지금 시대의 오사카 아줌마들처럼 큰소리로 따발총 쏘아대듯이 수다를 떨고 있었겠지요.
지금 제가 서 있는 이 곳에서 수천년전에 그들이 갯장어와 같은 음식을 먹으면서 수다 떨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꽤 재미있습니다. 이 전시실은 입장료가 무료니까 한번 들려 보세요.
나니와노미야[難波宮]궁에서 고대 오사카를 상상해 보다
자, 조몬・야요이시대 다음은 아스카[飛鳥]・나라[奈良]시대의 오사카로 가봅시다. 그런데 여러분, 오사카가 일본의 수도였던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까? 우에마치다이치 북쪽 끝에「나니와노 미야[難波宮]」라는 궁전이 지어져서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였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럼 오사카 시민 제 1호 님(유골)을 뵈러 간 김에 바로 그「나니와노 미야[難波宮]」궁으로 가봅시다. 아까 내렸던 모리노미야역에서 '주오 오도리'[中央大通]큰길을 따라서 서쪽으로 도보로 약 15분 가면 왼편에 드넓은 들판이 나타납니다. 얼마나 넓냐하면 90,677제곱미터 넓이입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 돌계단에서 독서하는 사람, 클라리넷 연습을 하는 사람 등 각자 자유롭게 놀고 있는 오사카 시민들의 모습들을 마음껏 잘 구경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바로 이곳이야말로 고분(古墳)시대에는 나니와즈[難波津](항구)로서 번창했고, 아스카시대부터 나라시대에 걸쳐서 고토쿠(孝徳)천황과 쇼무(聖武)천황이 2번에 걸쳐서 나니와노미야궁을 짓은 곳입니다. 이 곳에 일본 최초의 본격적인 국제도시가 존재했던 것입니다. 규슈[九州]와 간토[関東]지역, 그리고 한반도와 중국하고도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 벌판에서 고대의 오사카 상인들이 오사카 사투리로 "장사가 잘 되어갑니까?" "그럭저럭이요"
이와 같은 내용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겠지요.
이렇게 상상을 해보긴 하지만 아무래도 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 조금 더 자세한 것을 알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그 맞은편에 있는「오사카 역사 박물관(大阪歴史博物館)」으로 가봤습니다. 10층이 고대 오사카 전시장입니다. 여기에는 나니와노미야궁에 있었다고 하는 다이고쿠덴(大極殿:천황이 정무를 보던 정전)에서 행해진 의식의 모습이 실제 크기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화려한 주홍색으로 칠을 한 기둥 옆에는 당시의 의상을 입은 관리와 궁녀들이 쭉 서 있습니다. 당시의 스케일을 실감할 수 있기 때문에 한 번 가 볼 만합니다. 그 외에도 우에마치다이치에서 출토된 것을 중심으로 오사카의 유적이 다수 전시되어 있으며, 그 중에는「구다라[百済]」라고 숯으로 그려진 토기라든지 포도와 당초무늬의 부조가 들어간 망새와 기와 등 이국의 향기가 풍기는 것들도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먼 서쪽 지역에 대한 동경이 느껴져서 흥미진진합니다. 덧붙여서 이 전시실은 벽면이 위로 올라가는 장치가 되어 있어서 전망대로 변신하기도 합니다. 밑으로 내려다보면 눈부신 오사카의 거리 풍경이 펼쳐집니다. 물론 나니와노미야궁 터와 오사카성[大阪城]도 보입니다.
그리고 이 박물관 1층 현관은 바닥이 일부 유리로 되어 있어서 지하에 보존된 고분시대의 창고 터를 볼 수 있습니다. 여기저기 구멍이 나 있는 곳이 기둥을 세운 구멍이라고 합니다. 자원봉사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나니와노미야 유적의 총 면적은 고시엔(甲子園 오사카를 대표하는 야구장) 4개에 해당되는 넓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당시에는 바다에서 큰 궁궐이 보였을 것이라고 상상해봤습니다.
대륙문화의 결실을 보러 시텐노지[四天王寺]절로
고대의 분위기를 피부로 니끼려고 다음에 찾아간 곳은 시텐노지[四天王寺]절입니다. 나니와노미야궁 터에서 지하철을 타고 갈아탈 필요 없이 남쪽으로 쭉 가서 다니마치[谷町]선의「시텐노지앞 유히가오카」역에서 내리면 가장 가깝습니다. 이 시텐노지절은 593년에 쇼토쿠타이시(聖徳太子)가 지은 일본 최초의 본격적인 불교 절입니다. 1400년 동안 사람들의 뜨거운 신앙을 모아왔고 지금도 연간 200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참배하러 찾아옵니다. 고대의 오사카항을 통해 들어온 한반도와 중국대륙문화가 이 시텐노지절에서 꽃을 피웠습니다. 기와와 건축의 장인들을 백제에서 초빙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오중탑 등 가람 건물의 배치와, 건물을 회랑이 둘러싸고 있는 양식은 대륙의 영향을 상당히 받은 것입니다.
곧바로 큰 돌로 된 도리이(신사의 문)를 들어가 봤더니 길 양 쪽에 텐트가 늘어서 있고 깃발도 서 있습니다. 알고 보니까 찾아간 이 날은 마침[봄의 헌책 축제의 날] 이었습니다. 이 헌책 축제는 봄과 가을에 개최되며 간사이(関西)지역에서는 꽤 큰 규모라고 합니다. 다루고 있는 서적 수는 약 30만권. 소설책부터 미술서, 만화와 영화 포스터, 그리운 옛날 음반까지 빽빽하게 진열되어 있습니다. 덧붙여서 매달 21일에 열리는 (다이시에[大師会])와, 22일에 열리는 (다이시에[太子会]) 때는 이 날처럼 경내에서 골동품 장이 열려 노천상도 가득 늘어섭니다. 꽤 인기가 있다고 합니다.
이것 저것 정보도 조금씩 챙기면서 세이주몬(西重門) 이라고 불리는 문을 들어갔더니 주홍색 칠을 한 기둥과 하얀 벽, 녹색 격자로 이루어지는 꽤 화려한 색채의 오중탑, 금당(金堂), 강당(講堂)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남북으로 일직선으로 늘어서 있습니다. 이것이 '시텐노지[四天王寺]'양식이라고 불리우는 창건 당시의 양식이라고 합니다. 색채때문인지 약간 이질적인 존재감이 있어서, 이 오중탑을 우르러 파란 하늘에 구름이 흘러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잠시 고대로 타임슬립을 할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중심 가람 주변에도 여러가지 유서 있는 건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이시전(太子殿)은 물론 이 절을 창건한 쇼토쿠타이시(聖徳太子)를 모시고 있는 신당도 있습니다. 앞에 있는 건물(前殿)에는 16세 당시(미공개)와 2세 당시의 다이시(太子)상(발 너머로 볼 수 있음)을, 안쪽에 있는 건물(奧殿)에는 49세 당시의 목상이 있습니다. (1월 22일에만 공개됨) 가메이도(亀井堂)에는 우물이 있어서 그 옛날 쇼토쿠타이시가 수면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면서 나뭇가지로 자화상을 그렸다는 유래가 있습니다. 이 우물에는 옛부터「시라이시타마데의 물(白石玉出の水)」이라고 불리우는 깨끗한 물이 솟아난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아스카[飛鳥]시대의 검을 수장한 보물관도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이 돌무대입니다. 로쿠지도(六時堂)라는 신당 앞에 있는 연못 위에 조립된 무대입니다. 매년 4월 22일에는 여기서 쇼토쿠타이시를 기리는「쇼료에 무악 대 법요(聖霊会舞楽大法要)」가 열리는데, 그 때 볼 수 있는「덴노지 무악(天王寺舞楽)」이라는 춤이 재미있습니다. 화려한 색상의 의상, 언뜻 보기에 불길하게 보이는 검은 가면, 아이들의 등에 달린 작은 날개---일본사람들이 생각하는 소위「일본의 전통 행사」하고는 조금 다릅니다. 이것은 고대 대륙식과, 한반도식, 그리고 일본식이 복합된 춤과 연주라고 합니다(국가 중요 무형 민속 문화재라고 합니다). 혹시 기회가 되면 꼭 보러가십시오.
그 외에 추천 할 만한 곳으로는 너무나도 직절적인 이름을 가진 '극락정토의 뜰'. 3,000평의 일본정원인데, 절을 지키는 사람한테 여쭤봤더니 하얀 오솔길을 따라가면 지옥을 벗어나서 극락정토에 이른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체험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고 합니다. 따뜻한 계절에 와서 꽃과 시내를 구경하면서 걸어가 보세요. 특별히「지옥」같은 곳은 없으니까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정원 내에는 다실(茶室)이 있어서 이곳의 명물 츠리가네 만주(名物の釣鐘饅頭)라는 경단과 말차를 마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시텐노지마에 유히가오카(四天王寺前 夕陽丘 석양의 언덕)」이라는 역 이름으로 알 수 있듯이 이 근방은 옛날에는 아주 아름다운 석양을 볼 수 있었던 곳이라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서쪽에 극락정토가 있다고 해서 사람들이 석양을 향해 참배했었습니다. 이런 신앙은 짓소칸(日想觀)이라고 불러 헤이안(平安)시대이후 널리 퍼졌다고 합니다. 특히 우에마치다이치의 서쪽 끝에 위치하고 있어서 바다 위에 황금빛 길을 그리면서 너머가는 석양을 바라볼 수 있는 시텐노지절은 가장 극락에 가까운 절로 생각되고 있었다고 합니다. 추분과 춘분 때에는 시텐노지절의 서쪽 도리이 한 가운데로 너머가는 석양이 바라보이기 때문에 참배자들이 유난히 많이 몰려온다고 합니다. 이런 시텐노지절을 오사카 사람들은 친근함을 담아서「오사카의 불단(仏壇)」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나니와[難波]의 바다의 신을 만나러, 수미요시상(스미요시[住吉大社]신사의 별칭)으로
우에마치다이치 탐방의 마지막은 역시 스미요시[住吉]입니다. 스미요시라고 하면 1800년의 역사를 가진 스미요시타이샤[住吉大社]신사가 있는 곳입니다. 이 신사는 예로부터 바다의 신으로 숭배되어, 견당사(遣唐使)(나라[奈良]시대에서 헤이안[平安]시대 초기에 걸쳐, 일본에서 당나라에 파견하던 사신)도 출발전에는 여기서 참배를 하고갔다고 합니다.
오사카 시내의 유일한 노면전차인 한카이전차(阪堺電車)의 출발점은 덴노지의 아베노 긴테츠 백화점[阿倍野近鉄百貨店] 바로 옆에 있습니다. 땡땡! 이라는 벨소리를 신호로 출발해서 아베노수지라는 큰 길을 따라서 수미요시로 향합니다. 처음에는 큰길을 달리지만 가다가 민가 사이를 누비면서 갑니다. 중간에 지나가는 '히가시 덴가차야(東天下茶屋)역' 근처에는 옛날의 호족인 아베씨(安倍氏)를 모시는「아베노오지[阿部王子神社]신사」와「아베 폐사[安倍廃寺]」의 기둥 터가 있습니다. '데즈카야마 산쵸메[帝塚山三丁目]역' 근처에는「데즈카야마 고분[帝塚山古墳]」도 있습니다. 이 근방은 고급 주택가이기도해서 맛있는 케이크집과 레스토랑도 있습니다.
이런저런 설명을 하는 사이에 15분쯤 지나니까 수미요시타이샤[住吉大社]신사에 도착했습니다. 여기는 고대에는 삼나무 거목이 있었는데 그 가지에 세 마리의 매가 내려 와 앉아서 신의 땅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고 합니다. 긴장되고 공기가 과연 신이 계시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나무에 둘러싸인 경내에 바람이 불면 쏴아 하고 바닷물이 파도치는 소리처럼 들립니다. 참배로를 걸어가니 아치형의 큰 홍예다리[太鼓橋]가 나타났습니다. 이 다리는 건너기만 하면「액막이」가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다리는 너무 심하게 휘어져 있습니다. 경사가 심해서 내려갈 때는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그럼 입과 손을 정결히 헹구고 이제 대웅전으로 가봅시다. 뚜렷한 주홍색 기둥과 새하얀 벽, 노송나무 껍질로 인 지붕의 네 채의 대웅전은 서쪽을 향하고 있어서 사람들이「바다를 가는 배와 같다」라고도 표현합니다. 일자선으로 들어선 건물들은 실체로 보면 과연 박력이 있습니다. 서벅서벅 소리 나는 흰 자갈이 깔린 경내를 걸어다니며 네 채의 대웅전을 차례차례 참배했습니다.
오사카에서는 수미요시타이샤신사를 친근함을 담아서「수미욧상」이라고 부릅니다. 수미욧상에는 대웅전 외에도 해신(海神)한테 물려받은 시오미츠타마(潮満珠)라는 옥을「옥의 우물(玉の井)」에 넣어두었다는 전설이 있는「오와타츠미신사 (다이카이 신사(大海神社)라고도 함)」, 바다와 하늘의 안전을 주관하는 신=아라가미상(荒神さん: 사나운 신)를 모시는「후나타마(船玉)신사」, 바다의 신을 모시는「시가(志賀)신사」등 바다와 연관이 있는 신을 모시고 있습니다. 해운회사처럼 바다와 연관이 있는 기업체가 봉헌한 큰 석등이 있는 것도 납득이 갑니다.
그 외에도 바다가 생명탄생의 근원임으로, '수미욧상'은 사람들의 살림 전반을 지켜주는 신사라고도 합니다. 대웅전은 물론, 경내에 있는「다네카시샤[種貸社]신사」나「이치에비스다이코쿠샤[市戎大國社]신사」,「아사자와샤[浅沢社]신사」에서는 풍년과 자식복, 장사번창, 가내안전, 예능・미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원을 들어주는 신을 모시고 있습니다. 정말 다능하군요. 그래서 각 소원별로 기도를 하는 제사・행사도 연간 100가지 이상 있습니다. 수미요시타이샤 창건을 축하하는「우노하 신지(卯の葉神事)」라는 제사나 실제로 모내기를 하는「오타우에 신지(お田植え神事)(모내기 제사)」등이 있어 항상 많은 사람들로 북적입니다(오사카에서는 새해 첫 참배하는 신사로도 인기 No.1 입니다). 예로부터 사람들의 뜨거운 신앙을 받아 온 신사로군요.
참, 제가 말씀 드리는 것을 깜박했는데, 장사하시는 분은「핫타츠상('핫타츠'는 일본어의 장사'발달'에서 온 호칭)」으로 유명한「난쿤샤(楠くん社)신사」에도 꼭 참배하세요. 이 신사가 모시는 신은 에도[江戸]시대에 대웅전 동쪽에 있던 수령 1000년이 넘는 녹나무 거목에 신비스러운 영력을 느낀 사람들이 기도를 드린 것이 그 기원으로 나중에 오사카 상인들의 신앙을 모으게 되었습니다.「정식으로는 매달 첫번째 진[辰]의 날에 참배합니다. 48번 참배하면 "시종 장사 발달"의 영험이 있습니다 」라고 이 신사의 여자 신관이 가르쳐주셨습니다. 참고로 이 신사의 수호신은 마네키 네코(招き猫)라고 해서 한쪽 발로 사람을 부르는 시늉을 하고 있는 고양이입니다. 참배를 하면 마네키네코의 장식품을 하나 받을 수 있습니다(유료). 그리고 이 것을 48개 모으면 큰 마네키네코와 바꿔준다고 합니다. 갖고 싶은 생각도 조금 들지만 4년이나 걸립니다.
자, 고대 오사카를 찾아가는 우에마치다이치 탐방은 여기서 끝입니다. 어땠어요? 이 우에마치다이치 근방은 도심부하고는 달리 느긋한 분위기를 가진 곳이 많습니다. 산책할 겸 어슬렁어슬렁 걸어다니다보면 여러가지 발견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꼭 오셔서 오사카의 역사를 많이 느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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